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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 않다고요?
인권감수성의 핵심은 '불편함'입니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똥파리까지 우리의 감수성을 깨워주는 아홉 빛깔 무지개!

영화의 흐름에 몸을 싣고 괴물들을 마구 무찌르는 팬티만 입은 근육맨들에 열광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위험한 조류에 동조하게 됩니다. 예쁜 여성들으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가 강해져야 하고 ,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하고, 강한 군대를 갖기 위해서는 강한 이이들만 낳아서 키워야 합니다.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데 불필요한 약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버리면 됩니다. 강한 군인이 될 자질이 없는 자는 살 가치도 없으니까요. 이런 선택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출발점입니다.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면,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본문에서

영화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책소개)

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독교 등의 문제를 종횡무진 파헤쳐온 김두식 교수가 알기 쉽게 풀어낸 인권 이야기『불편해도 괜찮아』. 약 80여편에 이르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인용하며 인권을 맛깔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청소년 인권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동성애를 이야기한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금발이 너무해>나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페미니즘의 진화를 논하고, 영화 <300>, 영화 <오아시스>를 통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밖에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서는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을, <감각의 제국>, <천국의 전쟁>에서는 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논한다.

청소년 인권부터 시작해서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등 다양한 인권의 이야기가 영화와 함께 펼쳐진다.
편안하고 쉽게 그러나 핵심을 짚은 인권을 알고싶다면 추천한다.

Posted by 메달

 

불편해서 안괜찮아

 

  몇 일전 포털 사이트를 보다가 신문광고 문구를 접하고 너무 놀랐다. 지난 9월 29일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바성연)’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이라는 단체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난하고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의 광고를 조선일보에 실었다. 광고 문구는 이렇다.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 걸려 죽으면 SBS가 책임져라”라는 내용이다. 사실 이번과 같은 깜놀 광고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광고에서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왠말이냐!”라며 동성애 조장하는 SBS 시청거부운동 및 광고안내기 운동까지 벌였었다.

 

이 광고가 나간 이후 성소수자․기독교단체에서도 점차 드러나는 동성애혐오에 위기감을 느껴 많은 시민들과 ‘동성애자 인권지지’ 신문광고를 낸 적도 있다. 하지만 반성은커녕 동성애자와 HIV/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허위사실까지 유포하고 있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런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중에 한사람인 나도 이렇게 부족하나마 글을 쓰고 있다.

‘바성연’은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가 국민 건강과 공익에 반하고, 동성애를 미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오히려 그동안 방송과 미디어에서 보여졌던 동성애는 한국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제대로 된 내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동성애를 가볍거나 놀림거리의 대상 혹은 밝히기 부끄러운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동성애를 살짝이나마 그렸던 드라마들도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담지는 못했다. 몇 해전 인기리에 끝났던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는 성을 속이고 두 주인공이 사랑을 하는 내용이었다.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동성이 아니라는 오해가 풀리고 사랑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끝난 ‘개인의 취향(개취)’드라마 역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동성애자라고 오해를 한 내용이었다. 그때 한참 동성끼리 친하게 보이면 ‘너희들 혹시 개취냐?’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처럼 동성애를 그리긴 했지만 결국 동성애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내용을 담아내기에는 아쉬웠다.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는 동성애자들과 가족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구체적 고민들을 꽤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덕분에 동성애에 거부감이 있던 시청자들도, 아들이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면 오열하는 장면에 함께 눈물 흘리고, 결국 그를 받아들이는 가족에 공감을 표했다. 이러한 드라마야말로 방송을 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가는데 일조하는 진정한 공익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또한 항상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따라오는 단어가 ‘에이즈’이다. ‘바성연’은 “에이즈환자 160만명 중 50%가 동성간 성접촉 의한”,“에이즈환자 중 절반이 동성애자”,“동성애자 에이즈 감염확률 730배”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하지만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에이즈는 동성애자만 걸리는 질병이 아니며, 성관계만으로 전염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HIV 감염인이나 에이즈환자는 여타의 질병을 앓는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하면 다른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삶을 연명할 수 있다. 한 에이즈 인권활동가는 ‘에이즈 때문에 죽는게 아니라 약을 살 수 없어서 죽는다’라고 말했다. HIV 감염인/환자의 약 70%가 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동성애자들이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에 에이즈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동성애가 아니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가난’ 때문이다.

 

그 와중 한쪽에서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을 빌미로 동성애자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 <친구사이?>의 청소년 관람불가 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통쾌하게 패소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친구사이?>영화가 건전한 사회윤리, 선량한 풍속 및 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결정했지만 재판부는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들의 알 권리를 침해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관람불가 등급취소 판결을 내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조금씩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성연’은 이와 같은 눈물의 성과를 한번에 무너트리려고 한다. 성소수자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기서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드라마 상상 속에 존재하는 사람도 아니고 피해야 할 이상한 사람도 아니다. 누군가의 친구, 가족, 사회구성원이다.

남자라서 좋고 여자라서 좋은게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좋은 거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Posted by 메달


여기는 청원군 미원 일명 성규네 집입니다. 2박3일 동안 너무 즐거웠어요. 더 많은 사진이 보고 싶으신분은
다산인권센터 블로그를 찾아주세요..^^

http://humandasan.tistory.com/
Posted by 메달

 [UN 의사 ·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방한일에 즈음한 한국인권사회단체 입장]
  
 
2010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가 위태롭다
  

 
2010년 5월 5일부터 17일까지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 ·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Mr. Frank La Rue,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이하 특별보고관)이 1995년 아비드 후싸인 특별보고관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공식방문(country visit)’한다.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2009년 심포지움 참석을 위해 한국을 학술 방문(academic visit)했을 때, 한국에서 의사 ·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터넷 표현의 자유 실태와 언론인의 해고 등에 대해 깊은 관심과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유엔 의사 ·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1993년 공식 활동을 시작한 이후 192개 유엔 회원국 중 지금까지 24개국을 방문하였다. 그 중 한국은 이란에 이어 특별보고관이 두번째 방문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는 국제사회 특히 유엔이 2010년 현재 한국의 표현의 자유 후퇴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5년 전인 1995년이나 2010년, 한국의 인권수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유엔의 폐지 권고를 받았던 국가보안법은 작년과 올해 더욱 위력을 발휘하며 구속자들을 늘려가고 있고 정당한 노사협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형사 처벌하는 일이나, 평화적인 집회·시위 역시 원천봉쇄하거나 사후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는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정부가 나서서 징계하고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정부 보조금 지급에 대한 대가로 반정부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NGO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결국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명 ‘미네르바’와 광우병의심 쇠고기 수입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농림부장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은 모두 정부의 과도한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인한 피해자들이다.
 
6·2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반대되는 ‘4대강 사업 중단’, ‘고등학생까지의 무상급식’ 등의 주장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의 활동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친환경 무상급식 캠페인을 중단하라는 선관위의 공문을 다섯 차례나 받았고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게시했던 성당들은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다.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의 공식 방문을 즈음하여, 한국의 인권사회단체들은 지난 4월 28일 이러한 사례들과 입장들을 총망라한 「2010년 한국 표현의 자유 실태 보고서」를 발간하고 특별보고관과 국내외 언론에 발송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특별보고관의 공식방문을 계기로 지난 2년간 후퇴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특별보고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특별보고관이 조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한국 인권사회 NGO들도 최선을 다할 것임은 물론이다.
 
특별보고관의 조사에는 유엔 가입국이라면 당연히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해야하고 각 부처의 최고위 책임자들이 직접 조사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보고관의 조사에 얼렁뚱땅 시간을 끌거나 왜곡되고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놓게 된다면 한국은 또 한번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특별보고관이 2009년 5월 공식방문했던 몰디브에서는 특별보고관이 방문한 후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입에까지 재갈을 물렸던 지난 2년여를 반성하고 표현의 자유를 전면 보장해야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0년 5월 4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 군인권센터, 문화연대, 미디액트, 민주노동자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유엔인권정책센터,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운수노동조합 철도본부, 전국건설노동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작가회의, 한국진보연대
 
[UN 의사 ·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방한 : 표현의 자유를 위한 행동 제안]
 
유엔에 한국 표현의 자유 침해를 알립시다!
 
 
5월 4일 유엔 의사 ·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 씨가 입국합니다.
 
특별보고관은 5월 5일부터 17일까지, 경찰청·교육과학기술부·국방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법무부·중앙선거관리위원회·행정안전부 등 정부기관 뿐 아니라 인권사회단체와 피해자들을 두루 만나 한국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를 직접 조사할 예정입니다.
 
유엔에 한국 표현의 자유 침해 실태를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하여 보다 다양하고 많은 개인과 단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합니다.
 
 
1. 특별보고관에게 진정합시다!
누구든지 유엔에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하여 진정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보다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특별보고관에게 진정한다면, 특별보고관이 한국 표현의 자유 문제를 더욱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보내실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홈페이지: http://www2.ohchr.org/english/issues/opinion/
● 수 신: Mr. Frank La Rue
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 주 소: Palais des Nations
CH-1211 Geneva 10
Switzerland
● 팩 스:+41 22 917 9006
● 이 메 일: freedex@ohchr.org
 
* 유엔의 공식언어는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아랍어/중국어/스페인어입니다.

 
2. 트위터로 행동합시다!
 
5월 4일, 5월 6일, 5월 12일과 5월 17일은 특별보고관에게 트윗합시다.
해쉬태그(#표현의자유_)를 달고 트윗하면 그 내용을 모아 유엔에 전달하겠습니다.

Posted by 메달

<성명서> 불법 체포, 강제 단속! 경기도 경찰청을 강력히 규탄한다!!

 

 

설 연휴 벽두부터 반인권적, 불법 행위가 자행되었다.

경기도 경찰청은 지난 설 연휴 기간인 15일 동대문에 위치한 한 네팔 음식점을 그야 말대로 급습하여 그 자리에 모인 40여명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검문하고 이중 10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수갑까지 채워 체포한 후 양주출입국관리소로 넘겼다. 이중 한 명은 결혼이주여성으로 밝혀져 경찰의 조사 후 바로 풀려났다.

 

경기도에 위치한 경찰이 왜 동대문까지 출장까지 와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마구 잡이로 검문, 체포한 것일까.

 

이번 네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검문수색 및 체포 과정이 불법이며 인권유린에 소지가 높다는 것이 언론에 밝혀져 문제가 드러나자 경기도 경찰청의 입장은 팔색조처럼 변했다.

 

처음에는 인천출입국관리소의 협조 요청이 있어 단속에 협조한 것 뿐 이라 말했다가 이도 인천출입국관리소가 부인하자, “설 연휴에 네팔 음식점에서 네팔 이주민들이 밥을 먹으며 도박을 한다는 첩보가 있어 단속하러 나갔다”고 번복했다.

 

또 경찰은 처음에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압수수색영장을 받았다”고 말했다가 의정부지법이 이 또한 부인하자 “자국인들끼리 모이면 폭력 등 집단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폭력 및 도박 등의 혐의로 영장을 신청해 받았다”고 말을 고쳤다.

 

백보 양보하여 경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경찰이 법관에게 발부받은 영장은 말 그대로 수색영장이다. 그러나 경기 경찰청은 수색영장을 활용하여 40명의 네팔 이주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검문하여 10인을 체포하였다. 이는 경기 경찰청이 수색영장의 의미조차도 해석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던가 아니면 이들이 법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임의로 행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 측은 네팔어로 식당에 모인 40명의 네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왜 그곳에 왔는지 상세히 설명하였다고는 하나, 설명은 고사하고 식당 주인에게도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절차상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찰과 출입국은 언론 측에서 출입국관리소도 인계된 네팔 노동자들을 면회하려 하자 온갖 억측을 대며 면회조차 거부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자행하였다. 네팔 노동자들이 ‘좌파들의 모임으로 이념적 문제가 있어 강경하게 나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는 것이 그 근거라고 한다. 결국 기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면회는 이루어졌지만 면회조차도 감시하겠다는 황당한 간섭을 받아야만 하였다.

 

체포 과정에서 네팔 노동자들이 찍은 비디오 자료 또한 경찰이 이를 모두 그 자리에서 즉시 없애면서 검문과 체포 당시 반 인권적 행위가 있었다는 강한 의심은 배제하더라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아무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단속 권한도 없는 경찰이 ‘외국인 범죄’ 수사를 가장하여 대대적이고 반 인권적 단속에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반드시 그 배후와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한 불법적 행위를 일삼았던 경기 경찰청의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이 모두 금번 사건과 같이 잠재적 범죄자 그룹으로 간주된다면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권리를 짓밟는 이 번 사건은 대대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3년 전 여수보호소에서 벌어졌던 살해사건을 기억하는가!

 

산화해 가신 1이주노동자들을 인권과 노동권이 있는 인간으로 대우했더라면 그 분들은 잿더미로 둔갑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번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지하지 않았더라면 새해 벽두부터 날벼락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경찰의 반 인권적 불법 행위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드러내고 관련 불법 행위자들의 처벌과 체포된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석방될 때가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는 바이다.

 

 

 

 

우리의 주장

 

- 이주노동자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반인륜적 경기도 경찰청을 강력히 규탄한다!

 

- 불법 체포! 강제 단속! 경기 경찰청장은 공개 사과하라!

 

- 불법 행위 관련자를 처벌하고 체포된 이주노동자들을 석방하라!

 

 

 

 

 

 

2010년 2월 17일

 

단속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경기지역 이주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

 

 

 

Posted by 메달



지난해 용산참사가 벌어진 당시 남일당 옥상에서 농성을 벌였던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정대영(53)씨가 지난 24일 새벽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월 20일 남일당 점거농성을 벌인 혐의로 경찰로부터 무력 진압을 당한 후 연행됐다가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1월 9일 용산 철거민 다섯분의 장례식은 치뤄졌지만.. 그때도 알고있고 지금도 알고있듯이

남아있는 많은 철거민 분들이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고있다.

 

 

수억을 넘는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바 전전긍긍 하는 사람들 뒤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집은 인권이다.

물은 인권이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공허한 메아리가 언제쯤 실현 될수 있을지.. 고민된다.

내가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말이다..


낼 수요촛불에서 작지만...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 문화제를 열것이다. 춥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메달
22년 전 그대로... 박래군만 감옥에 갔다
재야의 인권운동가, 모란공원 동생 곁에 용산 희생자 묻다
10.01.14 14:57 ㅣ최종 업데이트 10.01.14 15:38 전관석 (sherpa74)

아마 상계동을 비롯한 웬만한 철거지역 '청소'는 모두 끝났을 때였을 것이다. '철거민', '재개발'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무렵, 1988년이었다. 언론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눈과 귀가 막힌 국민들은 곧 들이닥칠 외국인 손님맞이에만 분주했을 테다.

 

태극 문양의 끝을 곱게 말아돌린 대회 심볼, 상모를 쓴 호돌이가 '경축 24회 서울올림픽대회' 문구와 함께 육교에 다닥다닥 붙여지는 등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바로 그해 6월 4일 오후 4시경,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 한 학생이 올라가 외쳤다.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

 

그는 곧 자기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그었다. 분신. 그의 옷이 빠르게 타들어가 몸에 엉겨붙었고 불길은 곧 온 몸에 퍼졌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검은 몸뚱이로 한강성심병원에 옮겨진 그는 죽음의 문턱을 몇차례 오가다가 결국 이틀만인 6월 6일 12시 23분 숨을 거뒀다.

 

이 대학 인문대학 학생회장이었던 박래전.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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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4일 분신한 박래전 열사 노제
ⓒ 박래전기념사업회
박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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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묻힌 박래전 열사
ⓒ 박래전기념사업회
박래전

시커멓게 탄 동생을 지켜보던 스물 여덟 문학청년

 

숭실대를 위시한 서울의 대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박래전이 외쳤던 구호를 함께 외쳤고 거리 곳곳에 붙어있던 호돌이를 떼어내 태웠다. 그의 영정 뒤로는 "열사정신 계승" 펼침막과 수많은 만장이 뒤따랐다. "살인정권" "민주주의" 함성이 거리를 메웠고 학생들은 최루탄에 신음하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스물 여덟이던 그의 둘째형은 시커멓게 탄 동생의 목숨이 꺼져가는 순간을 지켜보며  오열했으리라. 형과 가족은 동생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했다. 당시 아직 환갑도 지나지 않은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이 땅에 들어간 그의 관 위로 흙을 뿌렸다. 한 명의 열사가 또 그렇게 검은 몸을 이끌고 하늘로 갔다.

 

동생의 죽음은 연세대 문학회 소속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던 문학청년 둘째 형의 삶을 뒤바꿔놓는다. 1987년 첫 수감지였던 대전교도소에서 목격한 비전향장기수들의 견결한 삶이 형의 고민을 깊게 만들어 놓았다면 이제 동생의 죽음이 그에게 또렷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형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아래 유가협) 활동을 시작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 몸담으며 그간 '대한민국에 도입될 수 없는 개념'이었던 '인권'에 천착하게 된다. 90년대 초, 제 몸을 불사른 꽃다운 청춘 50여 명의 장례를 도맡아 열사들의 하늘길을 배웅하는 게 그 시작이었다.

 

시나브로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대학 문학회 절친 우상호가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 마치 학생운동생활을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사람들이 '당'으로 '정'으로 '청'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인권 현장을 지켜왔다. 어쩌면 형의 시대적 책무는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동생을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에게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킬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으로 몇 개월 일한 것을 제외하고 그는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2001년엔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며 명동 성당 들머리에 스티로폼을 깔고는 다른 인권운동가들과 노상 단식투쟁에 나섰다. 서울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지만 침낭만 덮고 맨 바닥에서 날을 넘겼다.

 

심지어 2002년 3월 경기도 평택의 장애인 시설 에바다 농아원 정상화를 추진하면서는 비리재단 측으로부터 똥물 세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에바다 장애인들의 인권수호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동생 죽은 지 21년, 남일당 건물에서 다시 불에 타 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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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3월 19일 에바다 사태를 해결하고자 에바다농아원을 방문한 박래군 이사(오른쪽)와 박경석 이사가 농아원측 관계자들로부터 똥물세례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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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8년 6월 6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있었던 박래전 열사 안장식. 하관 후 백기완 선생이 관 위로 흙을 뿌리고 있다.
ⓒ 박래전기념사업회
박래전

2006년에는 평택 대추리에서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다가 조백기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와 함께 구속되기도 했고 2008년 새해 벽두 인수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 전환을 꾀하자 주저없이 다시 명동성당 바닥에 누웠다. 

 

어느새 그는 대한민국 인권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거창한 직책과 직위도 없었다. 그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일 뿐이었다.

 

그리고 2009년 1월 20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만한 높이의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몸에 불을 맞아 검게 숨졌다. 그의 동생이 그리 된 지 21년 여가 흐른 뒤였다. 

 

정권과 사법기관, 언론은 본질을 싹 덮고 현상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돌렸다.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현장은 을씨년스럽게 방치됐다.

 

공포와 은폐는 인권의 반대개념. 당연하다는 듯 형은 맨 앞에 나섰고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형은 참사 직후인 2009년 1월 23일 <인권오름>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올해 봄에는 모든 진보운동이 인권운동이 될 것 같다. 권리를 잃은 시대, 폭력이 극단적으로 난무하는 시대,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받는 시대에는 권리를 찾는 모든 운동이 인권운동이 된다. 그야말로 인권은 저항의 언어가 되고, 저항의 논리가 된다... 이런 봄을 그린다면 이 겨울이 춥지만은 않다. 그런 봄을 이 겨울에 준비해보자. 봄은 준비하는 자의 가슴에서부터 오지 않겠나."

 

그러나 춘래불사춘. 그가 그린 봄은 그 해에 오지 않았다. 결국 계절을 한 바퀴 돌아 2009년을 하루 남기고서야 겨우 용산 희생자 장례 일정에 합의할 수 있었다. 총리는 유감 표명의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3000쪽'과 '진상규명'은 끝내 염원으로만 남았다. 1년간 냉동고 안에 있었던 시신들은 해를 넘겨 2010년 1월 9일에서야 좁은 서울역 광장에서 장례를 치렀다.

 

범대위 활동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수배의 덫에 걸린 형의 삶도 내내 겨울이었다. 우선 동생의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4월 4일 숭실대 추모식에도, 6월 6일 모란공원 추모식에도 형은 갈 수 없었다.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행사였다. 대신 형은 편지 한 통을 동생의 벗들에게 전했다.

 

"요즘 제 심경이 참으로 착잡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함께 해야 하는데 답답하게 갇혀 지내는 이렇게 글로서나 제 얘기를 전할 뿐입니다. 제 동생 래전이가 바라던 세상이 제가 가는 인권운동의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인데 이 길이 종종 힘들게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만이라도 같이 하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래전이 묘소를 찾아줄 이들이 있기에, 이 힘겨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 대신 동생의 영전에 소주 한잔 올려주시고 담배 한 개비 태워주십시오. 그리고 죽은 동생 생각에 더해, 만날 수 없는 처지의 저 때문에 더욱 서럽게 우실 어머니를 꼭 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 동생 아직도 스물여섯의 얼굴로 여러분을 맞지만 그가 살았다면 벌써 마흔 일곱 장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날에는 제 동생과 소주 한잔 하면서 밀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 대신 동생의 말벗이 되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2009년 6월 래전이 둘째형 래군"

 

9개월여 병원 영안실과 명동성당 영안실에서만 지내던 그에게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을 마석 모란공원에 모신다"는 결정이 전해졌을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동생을 그 곳에 묻고 22년, 인권운동에만 매진했던 그에게 이 어처구니 없는 '반복'은 믿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형은 그의 동생 곁에 다시 다섯 '형제'를 눕혔다.

 

유가족들의 삼우제가 끝난 1월 11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나온 그는 "씩씩하게 다녀오겠다"면서 스스로 경찰 호송차에 올랐다. "세입자 철거민들의 권리는 여전히 개발이익이라는 공룡에 희생되고 있다"면서. "용산참사의 완전한 해결은 이 같은 문제들까지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살아남은 자들은 열사의 뜻을 이어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세입자들의 권리옹호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면서.

 
우리 시대 인권 상징이 구속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심드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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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3시 이종회·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남경남 전철연(왼쪽부터) 의장 등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 3인이 경찰에 자진출두하면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박효원
용산 참사

박·래·군.

 

박래전의 둘째 형 박래군은 그렇게 끌려갔다. 그의 후배인 시인 나희덕은 박래군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졸업 후 누구는 언론인이 되었고 누구는 교사가 되었고 누구는 학원강사가 되었고 누구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누구는 주부가 되었고 누구는 출판사 직원이 되었다. 박래군 선배는 어떤 생업도 없이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모두가 꿈꾸었지만 끝내 가지 못한 길을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그리고 변함없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못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졸업 후에 그를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를 우리 사회의 정의를 잴 수 있는 척도로 여기고 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중에서)

 

예상된 바 박래군이 결국 구속됐다. 경찰은, 그가 눈감고도 줄줄 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사례를 조목조목 들이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소설가 김별아가 <한겨레>에 쓴 글을 제외하고, 언론은 그의 구속 소식을 짧은 단신으로만 전한다. "우리 사회 정의의 척도"가 갇혔는데도 사회는 심드렁하다. 마치 사태의 '일단락'이라는 듯.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는 듯.

 

우리는 용산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정권에 분노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재개발의 달콤한 유혹에 또 얼른 귀를 연다. 인권이 옅어지는 사회를 격하게 통탄하지만,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대표되는 욕망은 계속 부풀어 오른다. 인권의 가치를 격하시키지는 않을지언정 결코 그것을 돈의 가치와 함께 저울에 올리지는 않는다.  

 

박래군의 발을 묶은 사람은, 그에게 풍찬노숙을 강요한 사람은 그리고 그를 기어이 감옥에 넣은 사람은 결국 우리 아닌가. 그의 동생 박래전이 산화한 지 22년, 박종철이 죽은 지 오늘로 꼭 23년. 당시 거리에서 열사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피터지게 싸웠던 대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시대, 하지만 그 의지는 이미 희미해졌고, 대신 평생 그 의지만 붙들고 산 사람은 감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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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6월 동생 박래전 열사 추모식을 맞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는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그는 수배로 인해 2009년 처음으로 추모식에 불참했다.
ⓒ 박래전기념사업회
박래전

1988년 50대 나이에 박래전의 관 뚜껑에 흙을 던져넣었던 백기완은 2010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용산참사 희생자 범국민장에서 조사를 읽었다. 군부독재는 오래전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열사정신 계승" "민주주의 수호" 만장은 유효하며, 마석 모란공원에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사회. 모든 게 그때 그대로인데 늘 차가운 거리에서 고생하던 박래군만 감옥에 갔다.

 

그의 구속 다음날, 서울고법이 용산참사의 미공개 수사기록을 변호인에게 공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이 반발하고 있지만 머잖아 그 '3000쪽'의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다시 그가 봄을 그릴 수 있는 것일까? 이 지독한 추위를 밀어내고 봄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일까? 하기야 늘 "냉동고에 1년이나 있던 그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가 아니었던가. 다가올 봄은 분명히 박래군의 가슴으로부터 올 것이다.

 

'동화'라는 시 한편을 그에게 보낸다. 그도 오랜만일 것이다. '겨울꽃'. 그의 동생 박래전이 살아있을 때 지었다는 시다. 그가 빨리 나와 모란공원의 여섯 영정 앞에 깊은 절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冬 花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지르는

가을꽃일 수 없습니다

 

제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冬花라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봄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Posted by 메달

2009년, 인권활동가들은 묻는다. 2009년 인권 10대뉴스를 뽑아주세요!!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었습니다. 8회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는 여러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한해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설문조사 목록에서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10가지만 선택해주시고 설문항목에 없는 사건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소식은 기타란에 적어주세요. 인권활동가가 뽑은 올해의 인권뉴스 10가지는 12월 10일(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올해의 인권흐름을 되짚어보며 새해의 즐거운 활동을 기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시더라도 적극적으로 설문에 응해주세요. ^^ 설문 응답은 12월 3일(목)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이 메일 내용을 각 단체 게시판으로 복사해가서 행여 메일을 놓치더라도 더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설문조사 바로가기 (클릭하시면 바로 설문에 참여하실 수 있어요)

http://spreadsheets.google.com/viewform?formkey=dHdOQzhsN0g5SVJJXzFYd3FROThDNEE6MA

from 8회 인권활동가준비모임

Posted by 메달

사진: 인권오름


스탑크랙다운 밴드에서 연락드립니다.

 

미누씨와 관련하여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미누씨는 단속이후 한국사회에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18년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이주노동자로, 문화 활동가로 열심히 살아왔던 본인이

과연 한국사회에 해가 되는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과연 이곳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정부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를 아주 빠르게 강제출국 시켰습니다.


이에 미누씨를 아는 우리들이 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미누씨에게 그간 미누씨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 공로상을 주는 형식입니다.


미누씨가 그간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매진하던 중 갑작스러운 강제출국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후 삶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점을 잘 알고 있어,

많은 분들이 조금씩 긴급히 생활비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모금을 미누에게 주는 공로상으로 변경해

미누씨의 한국사회 기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고

감사의 표시로 그 상과 상금으로 전달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생활비를 전달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공로상으로 변경해 상금으로 주는 것이

적은 돈일 지라도 받는 사람의 민망함도 덜어내고,

본인과 우리들이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고통을

보다 부드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로상의 내용은 ‘한국사회에 그간 당신이 기여한 바를 인정하여 이 상을 드립니다.’ 정도로 적고

그 뒷면에 이 공로를 인정한 사람들의 명단을 연명하여 보냈으면 합니다. 


다만 공로상을 주는 작업이 자칫 다른 연대 활동들처럼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라서 상에 동의하고 일정금액 (5,000원) 이상 내신 분들의 이름만 연명해 쓰기로 하고

별도의 추진위 같은 조직은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미누씨 개인이나 또는 그의 활동을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 미안함을 더는 일로 시작하여 빠르게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11월 12일까지)

   

공로상 내용 (가안)

 

공로상

 

이    름    미노드 목탄

국    적    네팔

생년월일

  

위 사람은 그간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및 문화 활동가로 활동하며

이주노동자의 인권 신장과 한국사회의 다양성 확산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큰 기여를 했기에 그 공로를 인정하고

감사드리며 이 상을 드립니다. 

 

2009년 00월 00일

 

한국 시민일동


뒷면 (가안)

여기 당신의 공로를 인정한 000명을 적습니다. 


홍길동, 000, 000, o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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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상에 적을 내용이나 형식에 관해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여방법


연락처 :  스탑크랙다운 밴드  소모뚜 (전화 : 010-7155-6581)

이메일 : scdband@daum.net

계좌번호 : 1006 001 325485 우리은행  송명훈

참여기간: 11월 12일(목요일)까지

명단은 계좌에 적힌 이름을 기준으로 작성하니, 별도의 이름으로 적을실 분들은 이메일 또는 전화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다국적 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




Posted by 메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803133758§ion=03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정말 승질나서 원..

 

멀리 멀리 이런 무시 무시한 사실을 알여주시길..

Posted by 메달